뉴스
뉴스
반도체 뉴스
커뮤니티
유머자료
질문답변
유튜브
자유게시판
공지사항
정보/후기
정보게시판
후기게시판
직종 정보
AI 질문/답변
구인/구직
익명게시판
자료실
자료실
이벤트
많이 검색된 키워드
#
배관
#
경기
#
2024
#
안전담당자
#
인천
검색조건
제목+내용
제목
내용
회원아이디
이름
and
or
로그인
회원가입
새글
최근 30일 이내 등록된 새글 이에요.
전체
글
댓글
이직, 선택, 결정.
기억을 되살려보면, 그 당시에는 하루가 마치 일주일 같았다. 사건 사고들의 연속이었고, 급변하는 상황들을 적응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2차사의 임시공구장님은 내가 남아있다가, 새로 열리는 업체로 같이 넘어가길 원하셨다. 3차사(여우 같던 총괄팀장님의 회사)의 팀장님도 자신이 끌어줄 테니 와서 배우라고 하셨다. 그리고 원래 내 소속이던 4차사의 팀장님도 같은 말씀을 하셨다. 이곳은 정치가 만연한 곳이라는 것을 이때 어렴풋이 알게 됐지 싶다. 태어나 처음 반도체 현장에서 일하게 된 나는, 다른 건 모르겠고 인사나 열심히 하자는 마음으로 입사 이후, 같은 샵장에 있는 모두에게 매일 인사를 했다. 별거 아닌 안부를 묻기도 하고, 그냥 말이 없는 분들께는 지나지며 쌍따봉을 날리기도 해했다. 지금 생각해 보자니 좀 부끄럽기도 하다. 하여간 그렇게 까불고 다닌 덕분에 여러 조공분들이나 안전담당자분들, 그리고 팀장님들과도 터울 없이 친하게 지내게 되었고, 그 때문인지, 회사가 쪼개지기 얼마 전부터 팀장님들이 내게 밀담을 건네기 시작하셨다. 한 사람은 오늘 무슨 일이 있었고, 앞으로 우리가 완전 장악을 하게 될 것 같다며 같이 하자고 얘기를 하시고, 또 다른 사람은 어떤 일이 벌어져서, 회의를 하게 될 거고 결과가 자신들에게 유리할 것 같다며 함께 하자고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저 내가 배관사가 배정되지 않은 가장 애매한 포지션에 있던 조공이라서 그랬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2차, 3차, 4차 업체 관리자분들이 다 내게 제안을 해주시니 한편으론 어깨가 올라가는 기분이 들었고, 다른 한편으론 머리가 아파졌다. 사실 처음부터 내가 가기로 마음먹은 곳은 정해져 있었다. 임시공구장님이 새로 가게 되는 업체. 왜냐면 나는 그즈음 이미 임시공구장님이 사실은 2차 업체 사장님의 친누나라는 걸 알고 있기도 했고, 한 달 동안 샵장에서 함께 일하며 정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맞추기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어디 어려운 부분 하나 없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형과 동생의 입장은 좀 달랐다. 일단 동생의 경우 이미 4차 업체 배관 사분과 한 달여간같이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배신(?) 하고 옮기기가 조심스러웠고, (4차사 팀장님은 당연히 따라오리라 여기고 의사를 묻지도 않고 명단에 넣었다고 한다) 나보다 좀 더 현명한 형의 경우에는 이곳 생리가 매번 말의 앞뒤가 다르고 달라지는 게 많으니, 최후까지 기다렸다가 선택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가 바랬던 세 가지는 이랬다. 첫째는 셋이 함께 갈 수 있는 곳. 지금 와서 보자면 업체 입장에서는 오히려 바라는 부분이었을 것 같다. 왜냐면 안전담당자나 조공의 단가에서 회사가 수익을 챙기는 구조라서 조공이 많을수록 회사에 좋기 때문이다. 둘째, 숙소. 이곳이 첫 고덕 업체인 동생과는 다르게, 물산 쪽에서 근무해 봤던 형과 나는 직발에서의 가장 좋은 점이 바로 숙소라는데 동의했다. (물론 직발업체 숙소가 좋은 건 아니라는 걸 지금은 알게 됐다) 여염리(최고의 위치)에다, 무려 신축빌라 펜트층에 화장실이 딸린 안방을 사용했으니 말이다. 사실 이런 환경은 직발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그때 특수한 상황이었을 뿐이지만, 당시로선 그걸 알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세 번째, 대기하는 일이 없을 것. 나로서는 이미 한 달이라는 시간을 날려버린 후라 더 이상은 일을 쉬어야 하는 상황이 없기를 가장 바랐다. 이 세 가지의 조건 중 3차 업체(사실 조건을 여쭤보지도 않았다)는 첫 번째와 두 번째를 이루어 줄 수 없었다. 당시 상황상 TO가 여유가 있지 않았고, 숙소도 문의를 하기조차 애매했다. 나는 4차사의 숙소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초에 우리 선택지에 3차 사는 없었기 때문에 딱히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문제는 2차사와 4차사였다. 4차사 팀장님은 참 좋은 사람이셨다. 나이가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형님으로 불리길 바라셨고 또 배관사며 조공들과 아주 수평적인 관계로 지내시길 주저하지 않았다. 덕분에 우리 셋 다 같이 넘어오는 조건도 좋다 하셨고, 또 숙소도 지금 사용하는 여염리 숙소 그대로 사용하게 해주신다고 하셨다. 그리고 차주에 바로 교육을 진행하고 입사도 할 수 있게 해주신다고 약속하셨다. 이미 한 달을 이 업체에서 마냥 기다리기만 했던 터라(당시에 연락도 잘 안됐다) 나는 온전히 믿을 수는 없었지만, 이사를 안 해도 될 거라는 부분은 메리트가 컸다. 마지막으로 2차사의 임시공구장님은 숙소는 여염리쪽 일 것이고, 셋이 오는 것도 가능하다고 하셨다. 다만, 나는 텀 없이 일할 수 있도록 일정을 맞춰 줄 수 있지만, 형과 동생은 바로 시작할 수는 없고 2주일 정도의 텀이 생긴다고 했다. 여기서부터 우리는 머리가 아파졌다. 솔직히 나만 생각했다면 현실적으로 텀 없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2차사를 선택하는 편이 좋았다. 하지만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셋이 함께 옮기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해서 어떤 결정을 하든 함께하는 쪽으로 가기로 정했다. 물론 내게 제안해 주셨던 분들께 모두 전화를 걸어서, 세 가지 조건에 부합하는 4차사에 남기로 했다고 죄송하다고 전했다. 결국 우리는 기존 그대로 4차사와 함께하기로 하고 명단을 올렸다. 그리고 이때 참 많은 걸 배웠다.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분명 4차사의 팀장님은 좋은 사람이고, 그의 의도도 오직 선의에 맞춰져 있는 걸 안다. 다만, 업체들의 사정으로 인해 팀장님이 약속했던 여러 조건들이 바뀌기 시작했다. 첫째, 기존에 있던 배관사들이 머물던 숙소만 남기고 여염리 숙소는 다 빼게 되었다고 우리가 살던 곳이 아닌 다른 숙소로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둘째, 일정이 일주일이 미뤄졌다. 기존에는 일주일만 대기하면 된다고 했었지만, 일주일이 더 미뤄진다고 얘기해 주셨다. 하지만 일주일 뒤면 무조건 들어갈 수 있다고 얘기하셨다. 하지만 이때부터 나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미 입사 전에도 일주일만 밀린다고 들었던 일정이 한 달을 채워서야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불안해진 나는 형과 동생에게 이야기를 하고, 나는 더 기다릴 여유가 없고 또 믿을 수 없으니 2차사로 가겠다고 이야기를 한 뒤 임시공구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사정을 말씀드리니 당연하다는 듯 받아주셨다. 그리고 혹시 형과 동생도 가능하냐고 여쭤보니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그리고 우리는 결국 2차사로 이직을 결정했다. 다행히 내 판단이 옳았던 것은, 4차사 업체는 결국 몇 주나 더 지나서야 새로운 곳에 입사했다. 하지만 과연 내 판단이 옳았던 걸까? 아니 고덕에 과연 옳은 판단이라는 것이 있을까? 참 재미있는 곳이다. 어쩌면 인생 그 자체를 드라마틱 하게 겪을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이직을 한 후 겪은 일들이, 결코 좋았다고 할 만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니? 좋은 건가? 모르겠다. 결론적으로 나는 힘들게 이직했던 그곳에서 해고됐다. 새로운 곳에서의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평택반도체현장 #삼성반도체노가다 #고덕반도체노가다 #고덕반도체 #고덕 #삼성 #반도체 #숙노 #노가다 #숙식노가다 #반노 #조공 #배관사 #고덕삼성 #삼성반도체 #전자직발 #반도체구인구직 #반도체현장 #칸막이 #칸마귀 #평택노가다 #체결사 #체결사시험 #삼성체결사 #준기공 #고덕후기 #평택반도체노가다 #평택노가다 #고덕노가다 #반도체노가다 #평택숙노 #고덕숙노 #고덕반도체 #평택반도체후기 #고덕반도체후기 #고덕조공후기
반노 2025-04-02
후기게시판
여우와, 어린 수사자
첫 번째와 두 번째 총괄 팀장님은 완전히 다른 성향의 사람이었다. 첫 번째가 사무 및 정치 성향이 짙었다면, 두 번째는 현장 중심의 열정적인 성품의 사내였다. 굳이 동물로 표현해 보자면, 한 명은 여우, 한 명은 어린 수사자 같은 느낌이었다. TBM(tool box meeting)부터 달랐다. 두 번째 총괄팀장님(이하 수사자)은 첫 총괄팀장님과는 다르게, 첫 TBM부터 단 한 번의 미팅도 빠지지 않고 직접 주도적으로 미팅을 실시했다. (마지막은 빠졌으나 그 이유는….) 자신을 포함해 작업자들 및 안전담당자들이, 모든 시간을 회사에 투자해야 한다고 연설을 하고는 했다.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때이고(실제로 이때 이미 우리 회사의 운명이 줄은 얇은 상태였다) 단 한 사람도 노는 시간을 용납하지 않겠다며 매일 화를 내고는 했다. 화를 정말 자주 냈다. 정말 자주 냈다. 실제로 그는 자신도 현장 업무에 직접 뛰어들어 작업을 했다.(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이다) 다만 그가 간과한 점은, 이곳에 근무 중인 사람들 중 반절 이상은 그보다도 오랜 경력을 보유한 사람들이었고, 그들이 수사자의 말을 전혀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굳이 이곳이 아니어도 일 할 곳들이 있어서 였을까, 아니면 경험적으로 의미 없다고 여겼는지는 아직도 난 잘 모르겠다. 점차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고, 불만들이 쌓여가고 있었다. 나는 곧잘 수사자의 업무를 돕곤 했다. 일단 그의 열정적인 모습이 보기 좋았고, 또 인간적으로 그렇게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총괄팀장이라는 직책을 갖고 있음에도, 그는 작업자들과 같은 숙소를 이용 중이었고, 심지어 거실에서 잠을 잤다. 수사자에게 부족한 건 경험인 것 같았다.(실제로 나보다도 어렸었다) 배관 업무적으로는 능력이 있다는 얘기도 들었었고, 작은 팀을 꾸려서 운영하는 능력도 괜찮다고 들었었기 때문이다.(feat.임시공구장님) 때문에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친한 안담분들이나 조공들에게 사실은 수사자가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넌지시 운을 떼고는 했다(아무 효과는 없었다). 다만 그에게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술을 너무 좋아했다는 점이다. 수사자는 매일 밤 술에 잔뜩 취해있었다. 그 이유는 감히 짐작하기 어렵다. 어떤 날 저녁엔 즐거움에 노랫소리가 들렸고, 또 어떤 날은 누군가와 소리를 지르며 싸우고는 했다. 체감상 두 달은 함께 보낸 것 같은데, 실제로 함께 한 시간이 2주 정도 지난 어떤 날 오후였다. 그날도 이전처럼 갑작스럽게 모든 게 끝이 나버렸다. 하지만 이유는 첫 번째와는 정말 달랐다. 왜냐면 파업을 할 사람들은 이미 다 떠나고, 남은 사람들은 수사자에게 맞춰주며 일을 열심히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납기에 맞춰 모든 일들이 순조롭다고 얘기를 들었었다.) 수사자는 매우 열정적인 사내였다. 그 열정은 사람을 가리지 않았다. 상대가 조공이던, 원청의 관리자 건 그 열정은 차이가 없었다. 게다가 그는 술을 매우 좋아했다. D-day 날 오전, 원청 관리자와 미팅을 진행했다고 한다. 하루 걸러 하루 진행하는 업무보고였던 걸로 짐작한다. 수사자가 생각하기에 팀은 안정적으로 변모했고, 그의 노력으로 납기가 늦춰지지 않도록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 향상감은 그에게 자부심을 생기게 만들었으리라 짐작한다. 그날은 그렇게 생겨난 작은 자부심이 문제의 원인이지 않을까 싶다. 이전 총괄(여우)은 그가 실제로 작업했던 것보다 더 많은 일들이 진행된 것으로 원청 업체에 보고를 했다고 한다. 그 보고를 믿고 있던 원청에서는 D-day 날 수사자가 보고한 업무량이나 업무 속도가 매우 저조하다고 평가했으리라. 자부심이 조금씩 차오르던 수사자는 매우 화가 나지 않았을까? 여우 같은 치밀함보다 열정이 앞서는 그는 억울함에 원청과의 미팅이 끝난 직후, 오전부터 술을 마시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술에 취한 채로 다시 사무실로 향했다. 그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직접 보지 못했고, 제대로 알지 못하기에 여러분들의 상상에 맡기도록 하겠다. 확실한 점은 그날 누구도 다치거나 하는 대단한 불상사가 일어난 건 아니다. 다만, 다음날 수사자가 사무실에서 난동을 부렸다는 소문이 퍼졌고, 수사자 본인은 코로나에 걸렸다고 회사에 보고를 하고는 잠적했다. 나는 그가 잠적했다는 얘기를 듣고, 곧바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름대로 그의 진심이 뭐였는지 이해하고, 사실은 그가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믿었던 내 마음을 그도 알고 있어서 전화를 받아준 게 아닐까 하고 믿고 있다. 그와 얘기를 하던 중 상황이 어떻게 진행될지 짐작을 한 나는 그에게 그동안 고생이 많았다는 덕담과(정말 2주간 그는 미친 사람처럼 일했다) 앞으로의 행운을 빌어주었다. 분명 젊음 수사자는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언젠가는 어른 수사자가 될 날이 올 거라고 본다. 사자는 사자니까. 물론 술을 줄여야 하겠지만 말이다. 아! 그 뒤로 남은 기간 동안 임시공구장님의 욕설은 더욱 심해졌었다. (사실 가장 상처받으셨으리라.. 짐작만..) 아쉽게도, 세 번째 총괄팀장님에 관한 이야기는 내게는 없다. 기존에 계시던 배관사분 중 한 분이 배정되었는데, 그 즈음 나는 회사를 옮기게 되었기 때문이다. 회사를 옮기는 과정도 정말 대단히 재미있었다.(그 당시엔 죽을 맛이었지만..) 다음 이야기는 그 과정에 대해 한번 떠올려 보고자 한다. 끝. #평택반도체현장 #삼성반도체노가다 #고덕반도체노가다 #고덕반도체 #고덕 #삼성 #반도체 #숙노 #노가다 #숙식노가다 #반노 #조공 #배관사 #고덕삼성 #삼성반도체 #전자직발 #반도체구인구직 #반도체현장 #칸막이 #칸마귀 #평택노가다 #체결사 #체결사시험 #삼성체결사 #준기공 #고덕후기 #평택반도체노가다 #평택노가다 #고덕노가다 #반도체노가다 #평택숙노 #고덕숙노 #고덕반도체
반노 2025-03-27
후기게시판
고덕에서, 정치를 배운다.
임시공구장님은 귀엽다. 키도 작고 참 정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데 남들이 볼 땐 분명 나와 같은 느낌은 아닐 거다. 무려 20년 이상 반도체 현장에서 근무를 하셨다. 분명히 20년 전의 건설 현장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빡세고 힘든 곳이었으리라. 그런 곳에서 키 155가 될까 싶은 어리고 젊은 여성이 살아남으려면 얼마나 강해졌어야 했을까? 20년 후 현재, 임시 공구장님은 입에 욕을 달고 사신다. 정말 모든 말을 욕으로 시작해서 욕으로 끝내신다. 지금은 현장에 있는 그 누구보다 강하다. 그런데 같이 한 달을 지내보니, 누구보다 연약하다. 분명 내가 느끼는 여린 면이, 20여 년 전 현장에 오기 전 성격이겠지 짐작한다. 그걸 느끼고 나면, 참 사람으로서 귀엽고 연약해 보인다. 그런 점이 가장 많이 드러날 때가 있다. 바로 누군가 필요한 게 생겼을 때다. 그 누군가가 만약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든(정말 어떻게든) 구해다 주신다. 반대로 싫어하는 사람은 정말 펜 하나를 곱게 받지 못한다. 그래서 같이 일하는 작업자 중, 임시공구장님께 미움을 받는 사람은, 펜 하나 받으러 가는 게 그날 중 가장 힘든 일이었으리라. 나는 다행히 별로 한 일이 없음에도 임시공구장님께 예쁨 받는 사람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상식적인 사람들을 예뻐하는 것 같다. 인사하고, 고마워하고, 사용한 물건은 제자리에 두고, 회사 물건을 자기 물건처럼 아껴서 사용하는 그런 상식이랄까? 하여간, 이 임시공구장님 이야기를 먼저 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바로 첫 총괄팀장을 데려온 사람이 바로 임시공구장님 이었기 때문이다. 총괄팀장을 데려올 당시에는, 분명 그 사람은 임시공구장님이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내 첫 번째 총괄팀장님은 사무적인 느낌의 사람이었다. 그 총괄팀장과 일하는 한 달 좀 안되는 시간 동안, TBM을 포함해서 거의 본 적이 없다. 한두 번 봤지 싶다. 얼핏 듣기로는 바로 얼마 전까지 공무(사무일) 직을 수행하다 왔다고 들었는데, 그래서인지 싶다. 전체적으로 팀을 현장 팀장님들한테 전적으로 맡기는 느낌이었다. 그래서인지 실질적인 리더는 3차 업체의 제일 짬 많은 팀장님이셨다. 전체 TBM에서 모두가 보는 앞에서 4차 업체 현장팀장님을 별거 아닌 것들로 갈구곤 했다. 당시에 현장 경험이 적었던 나는, 누가 누군지도 모르겠고, 나이가 더 어려 보이는 사람이 더 많아 보이는 사람을 갈구기에 직급 차이인가 하고 별로 신경 쓰진 않았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3차 하청업체가 4차 업체를 상대로 한 갑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런 비슷한 일들이 만연한 만큼 현장 상황은 개판이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봐도, 현장 돌아가는 상황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전체가 팀이라는 느낌이 없었다. 2차 직영, 3차 업체, 4차 업체 모두 분명하게 구분이 나누어져 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한 점은 3차 업체가 직영팀보다도 갑인 느낌이었다. 샵장엔 언제나 노는 사람이 나를 포함해 대여섯 명은 있었다. 그것도 문제지만, 실질적인 문제는 따로 있었다. 잘못된 밴딩(스틸 배관을 도면에 맞게 꺾는 작업)으로 버려진 배관들이 하루하루 쌓여만 갔다. 나는 2~3일에 한번은 폐기하기 위해 그 배관들을 짧게 자르는 일을 하며, 임시공구장님이 배관사들 욕하는 걸 들었다. 임시 공구장님 말을 빌리자면 한두 명의 배관사들 말고는 모두 일을 더럽게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한 배관사가, 공구를 달라며 임시공구장님에게 큰 소리를 냈다. 아마도 공구장님이 좋아하던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계약상 어쩌고저쩌고 그랬는데..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다. 알고 싶지도 않다. 중요한 건 그 상황에 3차 업체 팀장 중 한 명이 그 배관사 편을 들며 임시공구장님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반말과 고성이 오가며 상황이 더 안 좋아질 무렵, 임시 공구장님의 따님이 나섰다.(고덕의 업체들은 가족경영이 만연하다.) "야, 닥치고 꺼져." 정도의 말을 했던 것 같다. 스물 중반쯤 된 당돌한 친구였다. 뭐, 스무 살쯤 어린 팀장도 공구장님께 목소리를 높였으니 사실 그쪽도 할 말은 없을 거다. 그리고 점심이 지나서 갑자기 모든 일이 멈췄다. 정말 그대로 멈췄다. 3차 업체 팀장들은 팀원들을 이끌고 점심 이후 현장에 돌아오지 않았다.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으면 모든 일을 중단하고 사다리 등 자신들이 가져온 모든 공구를 빼겠다며 협박했다. 그 와중에도 나는 샵장에 남아있었다. 돈 벌어야 하니까. 그리고 다음 날, 그렇게 그들은 떠났다....는 아니고.. 원청 업체의 관리자가 나섰다. 2차와 3차사를 중재하려고 했지만 잘 되진 않은 것 같았다. 외려 3차사에 힘을 실어준 느낌이 강했다. 알고 보니 3차사의 대표가 총괄팀장이었다. 총괄팀장은 공무 출신이라서 그런지, 원청과의 대응이 아주 부드러웠을 것이다. 그에 반해 임시 공구장님은 특유의 센 성격으로 입지가 줄어들었지 않나 싶다. 그렇게 그날 하루 종일 나는 임시공구장님으로부터 총괄팀장에 대한 욕을 쉬지 않고 들었다. 솔직히 엄청 속상하셨을 것 같다. 믿고 총괄로 불렀는데, 배신을 한 격이다. 겨우 며칠 후, 3차사가 떨어져 나갔다. 그런데, 그냥 떨어져 나간 건 아니고 2차사의 자격으로 분리가 되어 나갔다. 새로운 샵장을 만들고 그들만의 공사가 이어졌다. 2차사였던 우리 쪽 공사 물량도 대거 가지고 갔다. 갑을이 뒤바뀐 것도 아니고, 그냥 갑이 무너졌다. 그리고 4차사였던 내 업체도 얼마 못 가 떨어져 나갔다. 2차사의 TO 인원을 3차사였던 업체에 밀어주는 바람에, 인원을 줄여야 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나는 세 업체에 다 잘 보여놔서(그냥 인사만 잘했을 뿐이다) 어디든 갈 수 있는 입장에 놓였다. 난감했지만, 결국 한 달 동안 함께했던 공구장님에게 가기로 했다. 당시엔 원청이 뭔지 잘 몰랐지만, 그냥 왠지 낭만을 지키고 싶었다. 의리 말고 낭만. 참고로, 나는 이 중에 내가 속했던 4차사 팀의 팀장님께 배운 점이 참 많았다. 3차사 팀장의 갈굼에도 아무 대응 안 하셨고, 분명 화가 날 상황이 많았고, 화가 나 보였음에도 침착하셨던 모습이 떠오른다. 인간적으로 참 좋은 분이다 싶었다. 모두를 자기 동생들처럼 대하던 기억이 난다. 참 자리 잡으면 국밥을 사드리기로 했는데.. 곧 연락드려야겠다. 뭐 결국엔 모두를 떠나보내고, 3차사가 떠나기로 한 그날. 새로운 두 번째 총괄팀장이 TBM에 합류했다. 그리고 그는 2주 만에 또 떠나야 했다. 그가 떠난 이유는 아직도 협력업체 사무실에서 간혹 이야기가 나오곤 한다. 그분이 떠나야 한 이유는 다음 글에 이어서 올리도록 하겠다.. 끝. #평택반도체현장 #삼성반도체노가다 #고덕반도체노가다 #고덕반도체 #고덕 #삼성 #반도체 #숙노 #노가다 #숙식노가다 #반노 #조공 #배관사 #고덕삼성 #삼성반도체 #전자직발 #반도체구인구직 #반도체현장 #칸막이 #칸마귀 #평택노가다 #체결사 #체결사시험 #삼성체결사 #준기공 #고덕후기 #평택반도체노가다 #평택노가다 #고덕노가다 #반도체노가다 #평택숙노 #고덕숙노 #고덕반도체
반노 2025-03-25
후기게시판
방진복, 샵장 대기
나는 참 인복이 많은 사람이다. 돌이켜보면 항상 좋은 사람들이 주변에 넘쳐났다. 다만, 과거엔 인식하지 못했다. 이곳에서도, 도착하자마자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몇 살 인가 어린 동생과, 몇 살 인가 많은 형. 우리 셋은 숙소에서 처음 만났다. 셋 다 성격이 극 I인데다, 술을 안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또 서로 개인 공간과 개인 시간을 완전히 존중해 준다. (주말엔 거의 만나지 않는다. 아.. 생각해 보니 평일에도 딱히...) 뭔가 각자에게 있는 지켜야 할 선을 침범하지 않다 보니, 아직까지도 붙어 다니는 게 아닐까 싶다. (여러 이유로, 다들 숙소를 나가 방을 잡고 살지만 일 끝나고 PC방을 갈 때는 꼭 함께다.. 붙어 다니는 게 맞나..?) 첫 출근은 동생이 제일 먼저 하게 되었다. 숙소에 도착한 건 내가 가장 처음인데, 교육이 밀려서 내가 며칠 뒤에 형과 함께 출근하게 되었다. 물산에서 출근할 때와는 달리 전자직발 출근 시에는 내방카드를 매일 아침 발급받아야 한다. (일정 기간 출근 시 장기 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다. 업체에 따라 일주일 단기 출입증도 있다.) 처음 오는 신입들과 옹기종기 모여서 내방카드를 신청했다. (신분증, MDM 앱, 재직증명서 필수) 그리고 안내역을 맡으신 공무님을 따라 '임시스막'으로 향했다. FAB (삼성 반도체 공장; Fabrication의 약자로 제조라는 뜻)이라고 불리는 공장 건물 내부로 들어섰다. 말이 공장이지,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15~20층 건물 대 여섯 개가 붙어 있는 느낌이랄까.. 칸막이로 일할 때는 볼 수 없던 건물의 완성된 풍경이 펼쳐졌다. 반도체 설비들이 줄을 맞춰 설치되어 있고, 모든 것이 깨끗했다. 온종일 켜져 있는 에어컨과 공기 청정 시설은, 먼지 한 톨 용납하지 않겠다는 이곳의 의지가 보였다. 내가 벽을 붙이고 천장을 붙이던 곳이 이렇게 완성된다는 것에 경의로움과 신기함이 느껴졌다. 모든 층이 완성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당시만 해도 phase 2를 진행하던 시기였는데, 그래서인지 임시스막이 있던 4층은 물산 업체들과 직발 업체들이 함께 일하는 구역이었다. 임시스막은 그야말로 간이 탈의실 구역이다. 신발장에 신발을 넣고, 삼성에서 제공하는 내복상 하의를 입고 방진복으로 갈아입으면 된다. 방진복 위에 식별띠라 불리는 업체명이 적힌 조끼를 입고, 어깨 쪽엔 이름표를 적어서 넣는다. 그리고 방진화를 입고 보안을 거쳐 입장하면 된다. 현재 임시스막 안에는 휴대폰 및 귀중품 보관용 라커가 있다. 예전엔 이런 시설물이 없어서 도둑들이 즐비했었다. 아직도 신발장엔 따로 라커가 없어서, 신발이 없어지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비싼 안전화를 구입하셨다면 자물쇠를 구매해서 신발 뒤꿈치 부분을 연결+체결이 필수다. 방진복을 입고, 안내해 주시는 분을 졸졸 따라 샵장에 도착했다. 샵장에 도착해서 제일 신기했던 것은, '앉아도 된다'라는 것이었다. 방진 비닐이 깔려있는 곳은 앉아도 된다. 앉아도 된다니.. 물산에서 일할 때는 하루 종일 서있는 것이 강제된다. 다리가 너무 아플 땐 몰래 눈치를 보다 몇 분 앉아있는 게 전부였는데.. 신입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해야 할 일을 기다렸다. 그때야 잘 몰랐지만, 우리는 4차 하청 업체를 통해 들어온 직원들이라 뭐랄까.. 별로 좋은 대우를 못 받은 것 같다. 3차 업체 팀장님은 직발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쓸모없다는 식으로 얘기를 하셨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야 구분이 없어졌지만, 그때는 그랬다. 그렇게 대기를 하다 오전 시간이 다 지나갔다. 점심은 형과 간단히 '행복한 한 끼'라는 함바집에서 식사를 했다. 그 당시에는 맛이 참 깔끔하고 좋았었던 것 같다.. 그래서 주위에 추천도 하곤 했는데.. (최근 먹어본 평가는 평택 식당 리뷰를 참조해 주시길 바란다.) 식사 후 다시 샵장에 모였다. 첫 출근인 안전담당자들은 기존에 있던 안전담당자들과 짝을 이뤄 팀으로 이동했다. (당시 초보 안전담당자분들 얘기로는 서류 등 매뉴얼이 딱 정해져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스스로 깨치는 수밖에 없어서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조공들도 각자 팀에 배정되어 뿔뿔이 흩어졌다. 나만 빼고. 웬일인지 나는 그저 덩그러니 혼자 남게 되었다.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기가 눈치가 보여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기 시작했다. 쓰레기를 줍고 눈에 보이는 더러운 것 들을 치웠다. 덕분인지, 임시 공구장님께서 배관사가 배정될 때까지 자기 일을 도우라며 끌고 가셨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사실 이 분은 2차사 사장님의 친누나였다.) 그 뒤 며칠인가를 공구장님을 도우며, 자연스럽게 샵장을 정리하며 틈틈이 자재와 공구들의 이름을 외울 수 있게 되었다. 양중을 하며 여러 팀장님들과도 인사를 트게 되었고, 안담 분들과도 친분을 쌓았다. (TIP. 인사를 잘 하라. 안전담당자에게 잘하라. 굽신 거리라는 게 아니다. 그냥 사회에서처럼 상식적으로 행동하라.) 샵장에서 대기하며 보낸 시간들 덕분에 (일을 하긴 한 건가..?), 여러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게 되었고, 다음 회사로 이동할 때 이곳저곳 내게 맞는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골라서 이동할 수 있었다. 며칠이 지난 후, 처음 배관사에게 배정을 받게 되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배관사가 된지 얼마 안 되신 배관사 분이었는데(준기공) 그래서 그런지 모든 게 엉망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을 스패너를 포함한 공구들과 자재들을 고소작업 중에 계속 떨어트렸다. 아마도 실적을 내야하기에 급한 마음에 일이 더 늦어지던게 아닌가 싶다. 또 환경안전이 바로 옆에 와있는데, 거의 다 했다며 불법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어처구니 없어 하던 환경안전 분의 얼굴이 아직 생생하다. 그리고, 조공과 안전담당자들은 점심시간을 한 시간쯤의 시간만 주고, 자신은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이상 보내다 늦게 들어왔다. 그렇게 며칠 함께 일하다가, 같이 일하던 조공이 여태까지 이렇게 해왔으며, 배관사님 때문에 곧 이직을 하려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나는 배관사님께 직접 불만을 얘기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반장님, 죄송한데 저희 점심시간은 좀 맞춰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식사하고 돌아오기도 버겁습니다." 반응이 정상적이지는 않았다. 자신이 일을 배울 때는 밥도 안 먹고, 또 매일 30분 일찍 들어와서 30분 늦게 나갔다느니, 돈 벌러 왔다고 생각하지 말고 배우러 왔다고 생각하라느니.. 난 돈 벌러 온 건데.. 그리고 이후에 만난 배관사분들을 겪으며 알게 되었다. 모든 배관사님들이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을. 다음날 다른 배관사와 내 욕을 하는 걸 옷을 갈아입으며 듣게 되었다. 웃음이 났다. 그렇지 이곳은 상식적인 곳이 아니지. 물론 지금 되돌아보면, 배관사 입장에서는, 본인은 이번이 첫 배관사로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며칠 되지도 않은 조공이 고개 뻣뻣이 들고 할 말하는 게 기분이 나빴으리라. 뭐 넘어가자. 그다음 날 나는 다시 샵장에서 대기를 하게 되었다. 임시 공구장님은 좋은 배관사가 곧 들어올 거라며 일단 샵장일을 도우라고 하셨다. (사실 아직까지도 나는 그 당시에 샵장에서 일할 때가 가장 힘들었다. 임시 공구장님은 정말 단 1분도 쉬지 않고 일을 하셨다.) 믿기 힘들겠지만, 나는 땀을 흘릴 정도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필요한 곳에 모두 찾아가서 도왔다. 예를 들어 10:00와 10:15분에 A반입구와 I반입구에 양중이 있다면, 두 곳에 내가 다 있었다. 그리고 한 달이 채 가기 전, 내가 살면서 이런 일을 또 겪을 수 있을까 싶던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하루하루가 시트콤 같았다. 그리고 그 시트콤은 첫 번째 총괄 팀장이 회사를 떠나는 과정에서 시작됐다. #고덕 #삼성 #반도체 #숙노 #노가다 #숙식노가다 #반노 #조공 #배관사 #고덕삼성 #삼성반도체 #전자직발 #반도체구인구직 #반도체현장 #칸막이 #칸마귀 #평택노가다 #체결사 #체결사시험 #삼성체결사 #준기공 #고덕후기 #평택반도체노가다 #평택노가다 #고덕노가다 #반도체노가다 #평택숙노 #고덕숙노 #고덕반도체
반노 2025-03-24
후기게시판
<KEYWORK> 숙소, 아홉 번의 이사
이제 ‘이사’라면 이골이 난다. 고덕에 온 후 일 년 동안 무려 아홉 번을 이사했다. 처음 동삭동에 있던 칸막이 팀 숙소에 이사하던 날이 떠오른다. 무거운 짐을 이끌고 ‘서정리역‘에 내려섰다. 침구류는 개인이 구매해야 한다는 말에 네이버 지도 앱을 열고 이불을 검색했다. 다행히 나 같은 사람이 많은 건지, 서정리역 바로 앞에 이불 가게가 있었다. 바닥에 까는 이불 한 장, 덮는 이불 한 장, 그리고 베개 하나, 이렇게 해서 35,000원을 건넸다. 5000원이라도 할인을 받아보려던 시도는 실패했다. 많은 짐과 침구류를 들고는, 대중교통을 탈 엄두가 나지 않아서 택시를 불렀다. ( 참고로 평택은 택시가 정말 안 잡힌다. 특히 고덕 주변은 더더욱 그렇다. 우스갯소리인지, 삼성 현장에서 버는 페이가 워낙 좋다 보니 평택 택시 기사님들은 모두 삼성에서 근무 중이라고 한다.) 내가 거주하던 숙소는 아파트였다. 삼익사이버 아파트라는 곳으로 지어진 지 20년이 넘은 곳이었다. 당시 숙소에 9명~10명 정도 있었던 것 같다. 방 네 개에 화장실 두 개. 현장 팀장님은 혼자 방을 쓰고, 나머지는 둘둘둘에 거실 2~3명. 거실 생활을 했기 때문에 굉장히 불편하고 힘들었던 것 같다. 다들 모집공고에서는 거실 안 쓰게 해준다고, 방 하나당 2인 고정이라고는 하는데, 이렇게 거실까지 닭장 채워 넣듯 인원수 꽉꽉 채우는 팀이 많이 존재한다. 화장실이 2개밖에 없어서 굉장히 불편했다. 그리고 숙소를 청소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청결상태도 매우 좋지 않았다. 좋았던 점은.. 없다. 나의 두 번째 숙소는 H 업체의 4차 하청으로 들어갔을 때이다. 맞다 무려 하청의 하청의 하청! 그런데 의외로 숙소는 너무 좋았다. 무려 ‘여염리’에 있던 신축 빌라의 복층이 있는 펜트층. 심지어 내가 들어갔을 때 단 한 명만 숙소에 있어서 내가 안방을 차지했다. (처음엔 함박산 길에 있는 숙소를 배정받았아서 이사했다가, 좀 더 가까운 곳으로 옮겨달라고 요청했다.) ‘여염리’를 특별히 강조 한 이유는, 현장 바로 앞에 있는 동네이기 때문이다. 출퇴근이 걸어서 10~15분 내외로 걸린다. 천국이다. 아쉽게도 해당 숙소는 두세 달 정도 지나서 나와야만 했는데, 이사해야 하는 당일, 오전에 문자로 통보를 받고 갑자기 이사하게 되었다. 10~16명이 써야만 월세를 낼 수 있는데, 3차 하청이 인원을 더 채용하지 못하게 해서 숙소당 고작 5~6명 정도만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규 빌라 숙소를 사람을 못 채운 채로 3~5개 정도 돌리고 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때부터 이사로 인해 꽤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세 번째 숙소도 다행히 여염리 였다. 심지어 처음 숙소보다 더 가까운 곳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H 업체에서 S 업체로 이직을 하였는데(동일한 2차사), 어찌어찌 4차사에서 2차 업체 직영팀으로 이직하게 됐다. 내가 지내던 숙소는, 해당 빌라 1, 2, 3층을 업체에서 통으로 임대를 했다. 그리고 나는 이 건물 안에서만 이사를 세 번 정도 한 것 같다. 3층 복층에서 아래층, 다시 3층 복층, 그리고 2층. 아 2층에서도 안방에서 작은방으로 한번 옮겼다. 이 모든 과정에서 나는 짐을 풀고 다시 싸고를 반복해야 했다. 물론, 이게 끝이 아니고 이 업체를 나가기 전에 아예 다른 숙소로 이사를 한 번 더 해야 했다. ㅋㅋㅋ 아 몇 번인지 세어보니까 웃음만 나온다. 이 업체에서 총 6개월 정도 근무했으니 한 달에 한 번 이상 짐을 싼 꼴이 된다. 뭐 어쨌든 이번에 입사한 업체로 오며 서정리 쪽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제일 풍경채 장당 센트럴이라는 아파트이다. 지어진지 얼마 안 된 아파트라 아주 좋다.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면 게이트까지 10~15분 정도 걸리는 것 같다. 방은 둘씩 쓰고 있고, 딱 하나 아쉬운 점은 에어컨이 없어서 여름이 좀 힘들다.. ㅠ 숙소 생활을 하며, 자는 곳의 환경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느낀다. 특히 나같이 내성적인 성향의 사람은 집에서까지 낯선 사람들과 부대끼는 게 쉽지 않다. 죽이 맞아서 밤마다 술 마시고 노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아니다. 내 얘기는 이제 끝. 숙소에 관련돼서 알고 있으면 좋은 팁?이다. *숙소의 방은 들어온 순서로 차지한다. 나이며 직책이며 상관없다. (업체별로 다를지도 모르지만 9번 이사하는 동안 똑같았음) *청소는 아무도 안 한다. 그렇다고 당신이 하면 당신만 한다.(적당히 자기 공간은 치우자) *숙소 내에서 생활용품은 각자 알아서 구비한다.(물 세면도구 세탁세제 주방용품 등등) *기본적으로 숙소에서는, 원래 친한 게 아니라면 인사 정도만 한다. (가끔 오지랖 넓은 분들은 밥도 해주고 한다.) *가끔 남의 것을 말없이 쓰는 사람들이 있다. 뭐 어쩌랴.. 속으로 욕하고 말뿐이다. *숙소 위치는 고덕동, 여염리가 최고다. 서정리 쪽도 괜찮다. 방축리 궁리 정도까진 자전거로 15분 컷 한다. 그 외엔 똑같다. 워낙 셔틀이 잘 되어 있기도 하고 여길 벗어나면 그냥 멀다. *개인적으로 방을 구하려고 한다면 깜짝 놀라실 게다. 월세가 서울보다 비싸다. 웬만하면 자기 직종에서 자리 잡힐 때까진 방 구하는 건 비추.
반노 2025-03-20
후기게시판
<KEYWORK> 전자직발, 배관 조공
처음에 알아본 것은 안전 업종이었다. 물산의 생명지킴이, 직발의 환경안전. 몸 쓰는 일이 전혀 없지만 페이가 적다. 공수제가 아닌 월급+시급제라서 연장을 하더라도 350 이상 벌기가 어렵다고 들었다. 눈을 조금 돌리니, 전자직발쪽 안전담당자(이하 안담)는 공수로 급여를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산보다 근무환경이 좋고(방진복을 입고 작업을 해서, 내 옷을 버릴 일이 없고, 먼지를 덜먹게 된다) 기공 1, 조공 1~2, 안담 1의 작은 팀으로 운영된다고 하기에 지원할 곳을 찾았다. 고덕에 대한 정보가 아예 없다면, 업체를 찾는 것도 쉽지 않다. 나는 이곳에 오기 전부터 여기저기 검색을 하다 밴드를 통해서 알아봐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나와 칸막이에서 일하던 팀의 사람들은 어디서 구인공고를 볼 수 있는지 몰라서 다른 곳에 가고 싶어도 못 가고 있는 상태였다. 결국 나를 따라 4~5명이 한 번에 직발쪽으로 넘어오게 되었다.(지금은 그중 한 명만 고덕에 있다) 직발로 넘어오는 것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업체에 입사지원을 했고, 사장님으로부터 숙소를 배정받았다.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았지만, 내가 지원한 곳은 3차도 아닌 4차 하청 업체였다) 그래서인지 진행되는 모든 단계가 매끄럽지 못했다. 원래는 숙소 배정이 된 그 주에 교육을 받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나는 그 숙소에 4주간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로 머물러 있어야만 했다. 해당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을 드리자면, 내방 신청 단계를 밟기 전까지는 근무하는 업체에서 계속 출근을 하시는 것을 추천드린다. 내방 신청이란 삼성 ‘사내화구간’을 방문할 권한을 요청하는 단계를 말한다. 처음 지원하게 되면 여러 가지 개인정보 및 서류를 제출한다. 그 과정에 setti.samsungsemi.com 에 가입을 해야 한다. 이후 원청(1차 업체) 교육장에 방문하여 보안 및 환경안전 교육을 받는다. 그 이후가 되어서야 공무(사무직원)를 통해 내방신청을 하게 되는데, 이때가 돼서야 진정 입사를 하게 되는 것이다. 여차저차 한 달여간 푹 쉬며 대기를 하다 보니, 우습게도 손목이 좋아졌다. 그래도 무리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안담을 하려 했지만, 사장님이 일단 조공이 더 부족해서, 조공으로 일하다가 안담을 해달라고 요청을 하시기에 그러겠다고 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서야 나는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교육은 원청의 성격에 따라 다르게 진행된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거나, 안전, 품질, 혹은 납기를 우선시하기도 하는데 그에 따라 교육의 내용이 다른 편이다. 교육이 끝나고 드디어 첫 출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곳은 물산에서 일하던 때와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완전히 다른 환경이었다. #고덕 #삼성 #반도체 #숙노 #노가다 #숙식노가다 #반노 #조공 #배관사 #고덕삼성 #삼성반도체 #전자직발 #반도체구인구직 #칸막이 #고덕후기 #고덕정보 #반노
반노 2025-03-19
후기게시판
<KEYWORK> 칸막이(수장) 후기
한달 남짓 칸막이 생활을 하며 느꼈던 것들. 해뜨기 전부터 일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수만명의 사람이 출근하는 모습을 보며 나태했던 내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소꿉장난 같던 가게를 운영하며 높아져 있던 코가 꺽였다. 나름대로의 노력을 쏟았다고 생각했던 시간들이 그저 장난같이 여겨졌다. 출근은 참 힘들다. 고덕에서의 출근은 더더욱 그렇다. 출근길에만 몇천보를 걸어야 했고 한 층의 높이가 보통의 아파트3~4층정도 되는 계단을 매일 4~6층까지 걸어 올라야 했다. 나름대로 건강을 위해 서울에서 매일 타던 자전거, 조깅이 무색했다. 일은 무난하다. 걷거나 서있는게 일의 7~80%는 된다. 고덕에서는 안전이 최우선이기에 서둘러서 일해서는 안된다. 완벽히 아는게 아니라면 가만히 있는게 낫다. 모르면 알때까지 물어봐야 한다. 어설프게 알고 했다가는 괜히 다치거나 두번 일해야 한다. 그러니 배우려는 자세와 의욕만 보인다면 예쁨받기 좋다. 인사를 하자. 안녕하세요. 수고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이것만 해도 예쁨 받을 수 있다. 그만큼 기본조차 안하는 사람들이 많다. 밥은 맛있다. 계약한 식당이 맛집이었는지, 걷는게 고되서 그랬던건진 모르겠다. 아침식사는 편하게 식사하기 좋았다. 셔틀이 내려주면 알아서 밥먹고 출근하면 되었다. 점심식사는 왠지 서글프다. 식당에서 미리 타온 김밥 두줄과 음료 하나가 한달동안 고정된 식사였다. 그것조차 편히 먹을곳이 없어서, 컨테이너 화장실 뒤편 공터에 앉아 먹었다. 그래도 식사 후 잠시 눈을 붙이면 서글픔은 금세 사라졌다. 저녁메뉴는 고기 반찬이 두가지 이상 나왔다. 특히 닭요리(볶음탕, 찜 등)이 정말 맛있었는데, 계약한 식당의 주 메뉴가 닭요리 여서 였던것 같다. 연장or야간은 고되다. 몇시간을 더 현장에 있어야한다는 생각에 발이 더 무겁게 느껴지곤 했다. 그래도 그 이상의 페이를 받기때문에 월급날엔 오히려 좋다. 퇴근길 발걸음은 가볍지만 무겁다. 신나서 현장을 빠져나오지만 곧 퉁퉁 부은 발의 아픔이 몰려오곤 했다. 누구는 일주일이면 적응되고, 누구는 몇달을 고생하기도 한다. 한사이즈 큰 안전화와 에어 깔창은 필수다. 일은 고되지 않다. 도박을 하다 망해서 온 사람, 사업이 망해서 온 사람, 급전이 필요해 온 사람, 기술이 있어서 외부에서 일하다 온 사람 등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곧 적응한다. 때론 여행경비를 벌려고 왔던 어린친구들이, 업무강도에 비해 너무 좋운 대가에 혹해 이곳에 정착해버리기도 할 정도다. 다만 다양한곳에서 오는 만큼 사람이 어렵다. 상식밖의 사람이 많다. 그래도 현장일이 처음인 나도 벌써 익숙해지고 이곳에서 미래를 꿈꾸고 비전을 찾고 있다. 와야할 이유가 있다면 주저할 필요 없다. 물산이든 직발이든, 할만 하다. #고덕 #삼성 #반도체 #숙노 #노가다 #숙식노가다 #반노 #조공 #배관사 #고덕삼성 #삼성반도체 #전자직발 #반도체구인구직 #칸막이 #고덕후기 #고덕정보 #반노
반노 2025-03-18
후기게시판
<KEYWORK>칸막이, 그리고 부상
칸막이 1주차, 아파트 숙소 두 곳에 팀이 나누어져 있었다. 내가 있던 아파트는 주로 철야조 사람들 이었기 때문에, 다른 아파트에 머물던 주간조 사람들이 새벽마다 우릴 픽업하러 왔다. -4시 45분 기상 -5시 30분 픽업 - 5시 45분 식당 도착 - 식사 후 각자 6시 30분 게이트 입문 - 7시 현장 TBM(Tool Box Meeting) - 11시쯤 점심(겨우 반년 전인데도 시간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1시 오후 근무 시작 -7시 퇴근 TBM -7시 30분 쯤 식당 도착 -8시 30분 쯤 숙소 도착 -11~12시 쯤 샤워 후 폰 보다 취침 조출(조기출근?)은 3시 반쯤 일어났던거 같다. 다섯시까지 현장에 도착 해야하기에 3시 반에 일어나서 아침은 먹지 않았던걸로 기억한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스트레스로 인함인지, 하루 두세시간만 자도 조금도 피곤하지 않았다. 다만 퇴근 후 약 2~30분, 식당까지 걸어가는 길이 그야말로 지옥 이었다. 케바케라고 하는데, 나는 퇴근 시간만 되면 긴장이 풀리며 온세상의 고통이 발바닥에 몰려왔다. 처음 신어보는 딱 맞는 안전화(*무조건 한치수 크게+좋은깔창 필수!!)와 땀에 젖어 불어터진 발바닥으로 하루 3~5만보 이상 걸었다. 칸막이 2주차, 첫 주말을 보내고 복귀하며 달라진 것은 발바닥이 적응을 했다는 것이었다. 발바닥이 아프지 않으니 모든게 수월했다. 앞서 언급 했듯, 업무강도는 낮은 편이기에 일에 적응하는 것은 쉬웠다. 그러나 건설현장은 업무의 강도보다 중요한 것이 안전이다. 작은 방심은 곧 사고를 불러온다. 무거운 빔을 들어 올리다가 손목 힘줄을 다쳤다. 요령이 없던 초보였기에 남들이 내리려고 힘을 뺄때 오히려 더 힘을 주다가 다치게 된 것이다. 팀장님께 보고하고 병원에가서 초음파 사진을 찍었다. 손목 힘줄이 찢어졌다는 진단을 받았다. 산재처리를 하고 쉴 수도 있었지만, 나는 돈이 절실한 상황이라 쉴 수가 없었다. 다행히 팀장님 재량으로 출근해서 청소 등 간단한 업무만 하며 나아질때까지 일을 계속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몇일 그렇게 있다보니, 문득 내가 너무 쓸모없게 느껴졌다. 누구도 다친 내게 일을 주지 않았고, 혹시나 일을 하게 되어도 괜찮은척 무리를 하다가 통증만 더 커졌다. 결국에 주급을 포기하더라도 칸막이 일 보다 몸을 덜 쓰는 일을 찾게 되었다. 칸막이 일을 시작한지 고작 4주째 였다. #고덕 #삼성 #반도체 #숙노 #노가다 #숙식노가다 #반노 #조공 #배관사 #고덕삼성 #삼성반도체 #전자직발 #반도체구인구직 #칸막이 #고덕후기 #고덕정보 #반노
반노 2025-03-14
후기게시판
<KEYWORK>칸막이, 칸마귀
칸막이, 또는 칸마귀로 불리는 직종이 내 고덕라이프의 시작이었다. 사실 머문 기간이 한달쯤 밖에 안되어서, 칸마귀라고 느낄 만큼 힘든 일은 겪지 못했다. 그저 운이 없게도 무거운 빔을 들다가 손목을 다쳐버렸고, 그 때문에 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직종에 오기 전, 잠시 들린 환승역 같은 느낌이었다. 자 아무튼, 처음 입사 확정 문자를 받고 숙소 주소를 받은 다음 고덕으로 향했다. 내 첫 숙소는 동삭동에 있는 아파트 13층이었데, 당시 쓰리룸에 9명이 사용하고 있었다. (다들 2인1실 이며 원룸이며 어쩌구 저쩌구 하는데 개뿔 그냥 팀장 마음대로 채워 넣는다. 친구랑 둘이 원룸을 잡아준다는 말에 속지 마라. 거의 구라다.) 심지어 처음 방문했을때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있었다. 건너편 라인으로 올라가서 옥상으로 건너오면 된다는 걸 안 것은, 백팩을 앞뒤로 두개, 양손에 에코백, 그리고 캐리어까지 짊어지고 13층을 오르고 난 다음 날 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을때 나와 같은날 입사하게 된 형이 한분 계셨다. 여러 사연이 있는 형이었는데, 칸막이를 떠나는 날까지 나를 참 많이 챙겨주었다. 덕분에 낯선 환경에 의지하며 적응 할 수 있었고, 이곳에도 좋은 사람은 있다는걸 알게해 준 사람이라 아직도 고마운 마음이 남아있다. (지금은 다시 서울로 올라갔다) 그 형 외에도 기존에 근무하던 사람이 있었지만, 정말 인사 한마디 없이 다들 자기 할일을 하며 무시했다. 나중에야 알게 된건, 칸막이 업종에 오는 사람들이 워낙 추노를 많이 하기에 아예 한달정도 동안은 인사도 안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너무 아쉬웠던 것은, 어찌되었건 신입이 왔는데 다음날 어떤 일정이 있고 어디로 가야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문에 다음날 오전 6시 즈음, 한시간 안에 회사에 방문해야 한다는 문자를 받고 부랴부랴 택시를 잡아타야만 했다.(심지어 고덕은 30분이 넘도록 택시가 잡히지 않는다.) 그 이후에도 교육, 물품 수령 등으로 두어번 회사를 찾아가야 했는데 아무도 데려가주거나 말해주지 않은 덕분에 택시비로만 몇만원을 썼다. (지금 되돌아보면 알아서 해야하는 것이 당연했던것 같은데, 그저 회사생활같은 일반적인 일만 해왔던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었다.) 처음, 회사에 등록, 교육 그리고 안전물품등을 지급받고 나면 일정에 맞춰 삼성으로 이동해서(각자, 알아서) 건강검진을 받게 된다. 전자직발의 경우 병원에 방문해서 검진을 받게 하고, 물산의 경우 야외에 텐트 몇 개 쳐놓고 돌아가며 검진을 받아야 한다. (전자직발, 물산 같은 단어들의 뜻은 정보 게시판에 공유하도록 하겠다.) 당시 9~10월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더워 죽는줄 알았다. 그리고 혈압이 높으신 분들은 미리 약을 챙겨드시며 안정적인 혈압유지를 해주시는게 좋다. 물산 건강검진시 기계의 문제인지 뭔지, 혈압이 높게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입사가 불가능 해질 수 있다. 다행히 나는 혈압이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건강검진 후 또 한번의 자체 안전교육이 진행되는데 이때 안전화가 KC인증이 없거나, 6인치(발목까지 가려주는)가 아닐시 즉시 귀가 조치를 한다. 나는 지급받은 안전화(6인치)보다 서울에서 구매해온 안전화(4인치)가 편해서 그걸 신고 교육을 듣다가, 귀가 조치를 받을 뻔 했다. (다행히 팀장님이 급히 퇴근하시는 분의 안전화를 공수해주셨다.) 태어나서 안전화를 처음 신어보는데, 4인치며 6인치며 내가 대체 어떻게 알겠는가? 대체로 물산은 이런데에 있어서 직발에 비해 매우 불친절한 편이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고, 스스로 겪고 알아야만 한다. 그래서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거지!! 아무튼, 교육이 끝나면 해당 팀의 운영방식에 따라 즉시 근무에 투입 될 수도 있고, 다음날 투입이 될 수도 있다. 나는 물론 마음의 준비도 없이 즉시 투입이 되었고, 첫날임에도 불구하고 아무 언급 없이 야간까지 근무해야 했다.(발아파서 죽는줄 알았다) 일은 대체로 힘든것은 없다. 그냥 서있는 시간이 더 많은 것 같다. 어딜 가든 일을 찾아서 하는 편인데도, 쌩초보였던 나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었다. 처음 일주일은 그냥 서서 지켜보고 바닥 쓸고 쓰레기 줍는 정도? 그리고 사용하는 도구나 자재들을 하나씩 외우면 된다. 또 안전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삼성이기에,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사람에게 즉시 일을 시키지 않는다. 자칫하면 개인 뿐만 아니라, 팀이 쫓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안에 관해서도 굉장히 엄격한데, 이것에 관한것은 나중에 자세히 풀어보겠다.) 가장 힘든점은 발이 매우 아프다. 안전화를 한치수 크게 신고, 깔창을 깔아도 발은 매우 아프다. 거의 2주동안은, 일이 끝나고 나면 퉁퉁 부어버린 발때문에 집에 가는 길이 지옥 같았다. 물론 이것도 케이스 바이 케이스 인게, 전혀 아프지 않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 한달이라는 시간이 짧기는 했지만, 칸막이로 오래 근무한 동료들의 말을 들어봐도 업무적으로 엄청나게 힘든점은 없던거 같다. 그런 일이 있어도 조공을 시키지도 않으니 초보라면 아무 걱정할 필요 없다. 다만 환경적으로 타 직종에 비해 안좋은 점들은 있다. 단가가 짜다거나 등등등.. 아무튼 요약 하자면, 1. 물산은 입사 일정 등등이 매우 불친절하니, 마음의 준비를 하자. (거의, 이래도 일할래? 이런 느낌이 들 정도였다.) 2. 처음엔 발이 매우 아프니, 가능한 편한 안전화와 깔창은 필수다.(그래도 아프다) 3. 삼성현장이 처음이라면, 안전규율 등이 익숙해질 때까지 시키는 일만 하자. (처음엔 뭐라하는 사람 없다. 되도록 빨리 익숙해지려고 하자.) 4. 좋은 사람도 많지만, 대부분 시간을 두고 친해져야 하는편이다. (말 끝마다 욕하는 미친X도 많다. 일일이 상대하지 말자.) 5. 내가 알기로, 삼성 현장에서 조공으로 일하며 '너무 힘들다'라고 느껴질만큼 업무량이 많은 업종은 없다. 그러니 어떤 직종이든, 일 자체에 대한 두려움을 가질 필요는 없다. 다만 근무 환경적인 부분에서 고려하는게 좋다. 끝
반노 2025-03-10
후기게시판
<KEYWORK> 지하실에서, 밑바닥으로
가게가 망한 후, 방구석 히키코모리로 한 달을 숨어 살았다. 예전에 중고로 구매한 30만 원짜리 중고 컴퓨터로 하루의 반 이상을 게임으로 보냈다. 잠, 게임, 잠, 게임의 반복이었다. 20대 초부터 우울할 때마다 반복된 나의 현실도피 루틴이었다. 다만 20대 때와는 다르게, 30대의 내가 감당해야 할 현실은 더 가깝고 무거웠다. 우울증에 잠겨있기엔 억지로라도 처리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여러 조건들과 현실적으로 내가 감당해야 할 고정지출을 생각했을 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노가다였다. 하지만 정말 쉽지 않았다. ‘노가다’하면 떠오르는 막연한 내 편견들과 인식들 때문에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어 주저했다. 바닥보다 아래에 처박혀있던 주제에 우습게도 밑바닥을 올려다보며 창피해 한 것이다. 그리고 또 빚을 다 갚고 나면 3~5년. 40에 가까워졌을 나이에 아무것도 없을 내 미래가 눈에 선해 모든 걸 그냥 포기하고 싶어졌었다. 매주 로또를 맞춰보았다. 말도 안 되는 망상에 빠져 이 지하실을, 밑바닥을 거치치 않고 빠져나갈 수 있게 되길 바랐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결국에 나는 여러 감정들과 함께(정말 억지로) 건설 기초안전교육장으로 가게 되었다. (현실이 등을 떠밀지 않았었다면 난 지금도 방에 숨어있지 않을까..) 교육이 끝나고 경력 많아 보이시는 아저씨 한 분이 강의실 앞에 올라와 명함을 나누어주셨다. 고덕 삼성에 좋은 팀들과 신규자들을 연결해 주는 일을 하고 계시다며 단가와 조건들을 설명해 주고 가셨다. 당시 떠돌던 뉴스와 주변인들이 이야기해 줘서 삼성반도체에 근무하는 걸 이미 염두에 두고 있었기에 명함을 잘 챙겨두었다. 이수증을 받고 나서 일주일간 집을 정리하며 일자리를 찾아봤다. 그 어떤 곳도 삼성반도체 근무 환경만큼 안전하고 또 벌이가 되는 곳이 없었다. 그래서 고덕이나 반도체 업종에 대한 정보를 찾아 이곳저곳 탐색을 해보았지만 생각보다 정보를 찾을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유튜브도 몇 개 안 나왔고, 인터넷도 그럭저럭의 후기들 몇 줄뿐이었다. ’일이 그렇게 힘든진 않다‘, ’발이 많이 아프다‘, ’숙소가 불편하고 사람이 너무 많다‘, 등등의 정보가 주를 이뤘다. 다행히 추가적으로 처음 적응하기엔 ’화재감시자‘, ’안전감시자‘ 가 좋다는 것을 알았고 가장 피해야 할 직종으로 칸막이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정보 찾기에 써놓고도 내가 처음 고덕에 와서 시작한 업종은 칸막이였다. 칸막이에(소위 ‘칸마귀’라고 불림) 대한 정보는 유튜브에 꽤 많이 있었으니 너무나도 피하고 싶었지만 처음 몇 달 만큼은 주급을 받아야 했던 나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지금도 같겠지만, 당시에 주급을 주는 업종은 칸막이와, 삼성 현장 내에서 존재하는 일용직 업종(현장 외부 펜스 설치 등을 하는 일로 알고 있다) 말고는 없었다. 다음 글부터는 본격적으로 고덕에 처음 발을 들여놓고 겪은 일들을 적어볼까 한다.. 매일 근무하는 와중에 짬 내서 글을 쓰다 보니 맥락이 잘 안 이어지고 끊기는 감이 있는 것 같다. 미숙한 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 죄송한 마음이다. 그래도 혹시 이제 막 지하실에서 밑바닥으로 올라갈 용기를 내고 계신 분들께 부디 도움이 될 수 있길 바라본다. 꼭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지금 돌아보면 이곳에 오기 전 느꼈던 막연한 감정들이 참 바보 같게 느껴진다. 오히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올라왔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가 크다. 아직도 여러 감정들로 주저하고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그럴 필요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고 또 어쩌면 새로운 기회가 있는 곳이 될 수 있다.
반노 2025-03-09
후기게시판
<KEYWORK> 반노의 시작
어쩌면 이렇게 글을 시작하는 건 틀린 일일지 모른다. 첫 글인 만큼, 오탈자며 어색한 표현들이 가득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선다. 글 솜씨도 초라할 테고. 하지만 무엇보다 내 숨기고 싶던 이야기를 이렇게 솔직하게 적어내려간다는 두려움이 더 크다. 그래도, 시작해본다. 나는 실패자다. 디저트가게를 운영하다 망했다. 빚더미에 앉게 됐다. 돈도 문제였지만, 그보다 더 큰 좌절감은 내가 모든 걸 걸고 운영하던 사업이 무너졌다는 사실이었다. 마치 내 인생 전체가 붕괴된 것만 같았다. 무기력과 우울증이 나를 잠식했다. 죽음마저 생각했던 그때, 나를 이끌어준 건 현명했던 전 여자친구였다. 그녀가 말한 곳은 경기도 평택, 고덕이라는 생소한 장소였다. 거기서 나는 노가다, 그것도 숙식 제공이라는 전혀 다른 세계에 서른이 넘어서야 첫 발을 내딛게 됐다. 두려움이란 감정이 온몸을 감쌌다. 그 당시엔 정말 내 인생이 끝난 것만 같았다. 인터넷을 뒤져보며 나를 안심시켜 줄 무언가를 찾으려 했지만,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그래서 고덕에 도착해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내 안의 두려움은 조금도 가라앉지 않았다. 이것이 내가 글을 쓰기로 결심한 가장 큰 이유다. 나처럼 새로운 시작을 꿈꾸며 고덕에 발을 들인 이들이, 혹은 이곳에 대해 정보를 찾고 있는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통해 작은 용기를 얻기를 바란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도 나를 아는 사람이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 내가 누구인지 알아채지는 않을까 두려움과 부끄러움이 공존한다. 나는 생각이 많고, 겁도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솔직하게, 때론 쓸데없는 이야기까지 담아가며 차근차근 적어나가려고 한다. 내 이야기를 꾹꾹 눌러 담아 올릴 생각이다. 앞으로 올릴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작은 용기가 되거나, 혹은 쓸모 있는 정보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반노 2025-03-08
후기게시판
배관사 ㅅㅂㅅㄲ
졸라 배관사가 왕인가 시ㅂㅅㄲ 졸라 부려먹네 내가 노예냐 ㅅㅂ ㅈㄹ 고깝다 하
키워크 2025-04-26
블라인드(익명게시판)
용인 세계 최대 반도체 단지…'첫 단추' 뀄지만 / SBS 8뉴스
과연 용인은 제대로 지어질 것 인가...?? p5도 멈췄는데.. 흠..
반노 2025-04-11
유튜브
내가 보고싶어서 퍼옴 ㅋ 오해원
ㅎㅎㅎㅎㅎ 워크돌 짱잼
반노 2025-04-03
유튜브
회사소개
회사소개 키워크(KEYWORK)는? 키워크(KEYWORK)는 반도체 산업 현장의 실질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근로자와 기업 간의 연결을 돕는 취업 정보 플랫폼입니다. 단순한 구인구직을 넘어, 현장의 목소리와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신뢰도 높은 콘텐츠를 제공합니다. 대표 인사말 “누구나 도전할 수 있도록, 정보를 나누고 기회를 연결합니다.” 반도체 현장은 폐쇄적이고 정보 접근이 어려운 구조입니다. 저희 키워크는 직접 발로 뛰며 얻은 경험과 데이터를 바탕으로, 근로자와 기업이 모두 신뢰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아직은 작은 시작이지만, 정보의 힘으로 더 나은 산업문화를 만드는 것, 그것이 저희의 사명입니다. 앞으로도 키워크는 여러분의 시작과 성장을 응원하겠습니다. — 키워크 대표 올림 회사 연혁 2023.07 - 반도체 근로자 커뮤니티 블로그 "반노" 운영 시작 2024.09 - 반노 브랜드 런칭 2025.01 - 반노 플랫폼 오픈 (banno.kr) 2025.03 - 반노 -> 키워크 브랜드명 변경(keywork.co.kr) 2025.03 - 일자리 매칭 및 커뮤니티 기능 강화 2025.04 - 반도체 실무 콘텐츠 발행 정규화 오프라인 서비스 현재 키워크는 온라인 중심의 정보 제공 및 중개 서비스를 운영 중이며, 일부 지역에 한해 오프라인 교육 연계 및 현장 매칭 서비스도 준비 중입니다. 운영진 소개 운영자: 반도체 2차 훅업배관 경력자, 현장 실무 5년차 기획팀: 산업 데이터 분석 및 콘텐츠 기획 디자인/개발팀: 자체 플랫폼 개발 및 운영 유지보수 커뮤니티 매니저: 온라인 소통 및 회원 관리 담당 우리가 지향하는 것 ✔ 정보의 힘으로 근로자의 선택을 돕고 ✔ 투명한 연결로 기업의 만족을 이끌며 ✔ 지속 가능한 구조로 산업의 건강한 생태계를 만듭니다. 슬로건 “Give Courage, Share Opportunity.” – 키워크는 용기를 주고, 기회를 나눕니다.
키워크 2025-04-16
공지사항
처음
이전
51
페이지
열린
52
페이지
53
페이지
54
페이지
55
페이지
56
페이지
57
페이지
58
페이지
59
페이지
60
페이지
다음
맨끝
Guest
로그인
회원가입
뉴스
뉴스
반도체 뉴스
커뮤니티
유머자료
질문답변
유튜브
자유게시판
공지사항
정보/후기
정보게시판
후기게시판
직종 정보
AI 질문/답변
구인/구직
익명게시판
자료실
자료실
이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