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게시판

2025.04.24 13:32

소설, 논픽션

  • 키워크 4일 전 2025.04.24 13:32 KEYWORK
  • 55
    3
기억을 더듬어 나의 이야기를 다시 쓰려니, 어쩌면 소설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원래 기억력이 좋은 편이 아닌 데다, 새로운 정보들에 치여 살다 보니 지난 시간들이 희미해졌다.

최근 썼던 글들을 읽으면서도 낯설고 생소한 기분이 든 걸 보면, 여러분들도 이 글을 적고 있는 현재 내 상태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다시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잠깐의 결심이라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말이다.



한 달쯤 지나 내게 드디어 사수가 생겼다. 아니, 사수라기보다는 스승이라고 해야 맞겠다.



기대 반 걱정 반의 마음을 갖고 있던터라,

숙소에 같이 살고있는 동생과 함께 배정되어

마음이 놓였었다.



그분은 하이닉스 출신의 배관사였고, 내가 배관에 대해 초반 1년동안 배운 거의 모든 것을 가르쳐주신 분이다.

그때는 정말 배관사가 되고자하는 욕심이 가득했고, 무엇이든 배우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배관사로써 형님은 확실한 A급 이었다.

특히 실측에 있어서는 더더욱.

일에 대한 자부심과 집중력이 남다르셨고, 나 역시 그분 덕분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형님과의 관계가 마냥 좋았던 것만은 아니었다. 외부에서는 한없이 털털하고 다정하던 사람이, 현장 게이트를 넘어서기만 하면 달라졌다. 배관에만 몰두하며 일이 틀어지면 면전에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고는 했다.



결국 몇달을 견디다 너무 힘들어서 형님께 팀을 옮겨달라고 요청했다. 다행히 형님은 내 마음을 이해해 주셨고, 다른 배관사에게 배정을 받을 수 있게 도와주셨다.

(습관처럼 안맞으면 언제든 얘기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오히려 팀을 나가고 나서 형님과는 더 가까워졌다. 같이 게임도 하고, 밥도 먹는 사이가 된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 형님에게 반년만 더 배웠다면, 나도 꽤나 괜찮은 배관사가 될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 남겨진 동생은 나를 원망했다.

형님의 화를 거의 내가 받아왔던 탓에, 동생은 큰 어려움 없이 지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생은 우려와는 다르게 잘 견뎌냈다.

형님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일을 가르쳐 주는데, 처음 맡는 업무를 가르쳐 줄때는 일부러 사소한 부분까지 예민하게 대하고 화를 많이 낸다.

그러면 대부분 두번째 업무를 맡게 되면 실수가 덜했다고 한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 동생이 처음하는 업무가 줄어들게되며 형님의 화내는 빈도도 줄었다.



또 오히려 점점 동생은 그런 형님의 분노마저 적응하며 1년이 지나서는 외려 그냥 대놓고 웃어버리기까지(?) 했다.

형님은 그런 반응이 처음이라 당황했다고 내게 얘기해줬다 ㅋㅋ.. 그 뒤로 화를 낼때 조금 망설여진다고..

동생이 말하기로는 너무 익숙해져서 갑자기 욱 하고 화내는 형님의 모습이 그냥 웃겨서 빵 터져 웃어버렸다고 한다. (얘도 정상은 아니다.)



내 첫 배관 스승과의 인연은 그렇게 끝이 났다.



다음에 만난 배관사는... 정말 형님과의 시간을 그리워지게 했다.
  • 공유링크 복사

    댓글목록

    profile_image
    별의계단  4일 전

    우리 형님도 이런 스타일ㅋㅋ

    2025-04-25 00:23

    profile_image
    초록나무  14시간 전

    형님이 그리운 이유 있네ㅋㅋ

    2025-04-28 13:38

    profile_image
    nature9  7시간 전

    누군가에겐 추억, 누군가에겐 트라우마...

    2025-04-28 20:09